왜 자막 게임 하나에 다 같이 밤을 새우게 됐나
2025년 게임판에서 가장 이상한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어 음성이 빠져 있고, 개발사는 들어본 적도 없는 프랑스 신생 스튜디오. 그런데도 디시·루리웹·레딧·X 어디를 가도 같은 제목이 박혀 있었습니다. Clair Obscur: Expedition 33. 한국에서는 “클레르 옵스큐어”, “33 원정대”, 혹은 그냥 “익33”으로 불립니다.
처음에는 의심부터 들었습니다. 턴제 RPG가 다시 뜬다는 말은 매년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12월 11일 LA에서 열린 The Game Awards 2025에서 결과가 정리됐습니다. 익스페디션 33이 게임 오브 더 이어를 가져갔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무더기로 노미네이트된 다른 부문도 거의 다 휩쓸었고, 베스트 오디오 디자인만 배틀필드 6에게 내주는 정도였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이 330만 장을 넘었고, 이후 800만 장 돌파 소식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화제작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의 표준”을 만든 게임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한국어 더빙 되나요”, 그리고 “처음에 누구부터 키워야 해요”. 이 글은 정확히 그 두 질문을 중심으로, 왜 이 게임이 GOTY까지 갔는지부터 첫 캐릭터 선택까지 한 번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정리 — 익스페디션 33은 도대체 무슨 게임인가
한 줄 요약은 이렇습니다.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분위기를 가져온, 회피·패리 기반의 액션이 섞인 턴제 RPG. 개발사는 2020년 프랑스에서 창립된 산드폴 인터랙티브(Sandfall Interactive)로, 첫 작품이 바로 이 게임입니다. 퍼블리셔는 Kepler Interactive. 엔진은 언리얼 엔진 5를 썼고, 출시일은 2025년 4월 24일이었습니다.
세계관은 다소 시적입니다. 매년 거대한 ‘페인트리스(Paintress)’가 모노리스에 숫자를 그릴 때마다, 그 숫자 이상의 나이를 먹은 모든 사람이 사라집니다. 올해 그려진 숫자가 33. 즉, 34세 이상은 다 사라집니다. 이 흐름을 끊기 위해 매년 ‘원정대(Expedition)’가 떠나고, 우리가 조작하게 되는 팀이 33번째 원정대입니다. 제목이 익스페디션 33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장르적으로는 페르소나·로스트 오디세이·세키로를 한 솥에 넣고 끓인 느낌이라는 평이 자주 나옵니다. 턴제 골격은 JRPG이지만, 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회피·패리·점프’로 막아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멈추지 않습니다. 메타크리틱 점수는 PC·PS5 92점, Xbox Series X 95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5 GOTY까지 거머쥔 진짜 이유 다섯 가지
표면적인 수상 기록만 보면 “예쁘고 잘 만들었나 보다” 정도로 끝납니다. 그런데 익스페디션 33이 받은 점수와 매출 곡선을 뜯어 보면, 단순히 ‘좋은 게임’이 아니라 ‘업계의 기준선을 흔든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이유는 다섯 갈래입니다.
1) 30명 남짓한 코어 팀이 만든 트리플A 체급
산드폴이 공개한 정보를 종합하면, 핵심 개발 인력은 30명대였습니다. 외주를 포함해도 100명 수준입니다. 같은 시기 비교 대상이 된 콜오브듀티·어쌔신 크리드·GTA 시리즈가 수천 명 단위로 굴러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게임은 ‘사이즈 대비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비현실적입니다. 인디라기에는 비주얼이 너무 깔끔하고, 트리플A라기에는 팀이 너무 작습니다.
2) ‘턴제 + 패리’라는 장르 융합이 실제로 먹혔다
턴제 RPG에 액션 게임의 타이밍 시스템을 얹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마리오 RPG가 가장 유명하죠. 다만 그것을 ‘진지한 서사 RPG’ 스케일로, 모든 적 공격에 일관되게 적용한 사례는 드뭅니다. 익스페디션 33은 거의 모든 적 패턴에 회피·패리·점프 타이밍이 박혀 있고, 패리 성공 시 카운터 공격까지 들어갑니다. 결과적으로 ‘턴이 끝나면 손을 놓는’ 기존 JRPG의 정체 구간이 사라졌습니다.
3) 사운드트랙이 게임을 통째로 끌어올렸다
오케스트라와 보컬을 적극적으로 섞은 사운드트랙은 출시 직후부터 따로 회자됐습니다. 일부 보스 전투곡은 스포티파이 클래식·게임 OST 차트 상단을 한동안 점유했습니다. 베스트 스코어 앤 뮤직 부문 수상이 사실상 당연한 흐름이었습니다.
4) 벨 에포크 + 라이트 다크판타지라는 비주얼 정체성
19세기 말 파리의 의상·건축 양식을, 모노리스와 거대 페인트리스 같은 초현실적 오브젝트와 섞은 미장센이 일관됩니다. ‘프랑스 스튜디오가 프랑스 미감으로 만든 RPG’라는 정체성이 시각·문체·음악 전체를 묶어 줍니다. 베스트 아트 디렉션 수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5) 서사가 마지막에 무너지지 않았다
RPG가 GOTY에 못 가는 가장 흔한 이유가 후반부 붕괴입니다. 익스페디션 33은 종반에 한 번 더 시점을 뒤집어 버립니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끝낼 것인가’를 플레이어에게 떠넘기는 구조라, 엔딩 후 일주일 동안 글을 못 쓰겠다는 후기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게 베스트 내러티브 수상의 배경입니다.
한국어 더빙은 정말 안 나오나 — 자막 대응 현황
가장 많이 검색되는 질문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결론은 “음성 더빙은 영어와 프랑스어, 한국어는 자막만 지원”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 코리아 공식 페이지 기준으로도 음성은 영어·프랑스어 두 가지이고, 자막은 한국어를 포함한 10개 이상 언어가 지원됩니다.
처음 들으면 아쉽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의외로 자막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 보이스 모두 ‘영국식 영어 + 프랑스식 억양’이라는 게임의 톤과 잘 어울리고, 한국어 자막 번역도 무난한 편입니다. 본인이 어느 쪽을 들을지는 취향 문제인데, 분위기를 살리려면 프랑스어 음성 + 한국어 자막 조합을 추천하는 후기가 많습니다.
전투 시스템 핵심 — '턴제인데 액션 같은' 이유
전투는 4명 파티 중 3명을 출전시키는 구조이고, 각 캐릭터는 ‘기본 공격 / 스킬 / 아이템 / 자유 사격(에임)’으로 행동합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JRPG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적이 행동할 때 우리가 ‘방어 행동’을 직접 입력한다는 점입니다.
- 회피(Dodge): 타이밍이 비교적 관대. 대미지 0. 초보자가 처음 익혀야 할 동작.
- 패리(Parry): 회피보다 입력 윈도가 좁음. 성공 시 적의 콤보가 끝난 뒤 강력한 카운터 공격이 들어가고, AP(액션 포인트)를 회복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패리 없이는 답이 없는 보스가 늘어남.
- 점프(Jump): 지면 판정 공격을 회피하는 동작. 일부 보스는 점프 강제 패턴을 따로 깔아 둡니다.
- 자유 사격(Free Aim): 자신의 턴에 1인칭 시점으로 약점을 직접 조준해서 쏘는 시스템. 약점·아이콘이 떠 있는 부위를 맞히면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요컨대 메뉴 선택은 차분히 하되, 적이 칼을 휘두를 때는 손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콘솔에서 안정적인 60프레임을 유지하지 못하면 패리 윈도가 들쭉날쭉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프레임이 흔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이 부분이 신경 쓰인다면 PS5 Pro의 PSSR 업데이트 후 프레임 실측 리뷰를 같이 보면, 같은 게임이 콘솔 환경에 따라 어디까지 흔들리는지 감이 잡힙니다.
입문자 캐릭터 추천 3인 — 누구부터 키워야 시간을 안 버리나
한 번이라도 RPG에서 ‘잘못 키워서 보스 앞에서 막힌’ 경험이 있다면, 이 섹션이 가장 중요합니다. 익스페디션 33은 1막에서 쓸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돼 있고, 후반에 합류하는 캐릭터일수록 시스템이 복잡해집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직관적으로 강한’ 캐릭터에 자원을 몰아주는 편이 시간 손실이 적습니다.
IGN과 Maxroll의 빌드 가이드, 그리고 r/expedition33의 입문자 스레드를 종합해 봤을 때, 처음 키워야 할 세 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구스타브(Gustave) — “처음 잡는 검”
오프닝부터 함께하는 주연급 캐릭터입니다. 기본 공격은 검, 보조 무기로 의수에 장착된 ‘오버차지’ 메커닉이 있습니다. 일반 공격을 누적해 오버차지 게이지를 채우고, 한 번에 터뜨려서 큰 대미지를 넣는 단순한 구조라 입문자가 가장 익히기 쉽습니다.
딜·서포트 양쪽으로 다 키워지는 ‘만능형’이라, 처음 50시간 동안에는 “구스타브를 안 데려가는 조합”을 굳이 짤 이유가 없습니다.
② 륀(Lune) — “원소 누적 마법사”
원소(불·얼음·번개·대지)를 발사할 때마다 ‘스테인(Stain)’이라는 잔여 효과를 자기 몸에 누적시키고, 다른 스킬이 이 스테인을 소모해 추가 효과를 일으키는 구조입니다. 머리를 좀 쓰는 캐릭터지만, 룬·픽토(이 게임의 장비 패시브) 세팅 한 번만 잡아두면 보스전 광역 대미지가 통째로 갈립니다.
처음에는 ‘파이어 → 라이트닝’ 순으로 누적 효과를 노리는 단순 콤보부터 익히면 됩니다.
③ 마엘(Maelle) — “스탠스 펜서”
세 가지 자세(Offensive, Defensive, Virtuose)를 바꿔 가며 싸우는 검사형 캐릭터입니다. 비르투오제(Virtuose) 자세에 진입하면 대미지 배율이 폭발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후반부 ‘즉사 보스 컷’이 가능한 잠재력 1순위로 꼽힙니다.
단점은 처음에는 자세 전환 조건이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가이드 한 번 따라 빌드하면 1막 중반부터 체감이 옵니다.
초반 빌드 방향 한눈 비교표
각 캐릭터의 역할과 초반 우선순위를 표로 압축했습니다. 픽토와 룬 세팅은 캐릭터마다 따로 챙겨야 하는데, 자원이 제한적이므로 우선순위를 정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 캐릭터 | 역할 포지션 | 핵심 메커닉 | 초반 우선 스탯 | 초반 우선 픽토 방향 |
|---|---|---|---|---|
| 구스타브 | 딜·범용 서포트 | 오버차지 누적·폭발 | Might / Agility | 치명타 증가, 오버차지 가속 |
| 륀 | 원소 광역 딜러 | 스테인 누적·소모 | Power / Defense | 원소 대미지 증가, 스테인 추가 |
| 마엘 | 고배율 단일 딜러 | 3 스탠스 전환 | Agility / Might | 비르투오제 진입 가속 |
| 시엘(중반 합류) | 버프·디버프 | 스카이트 카드 | Power / Vitality | 카드 발동 확률 |
| 베르소(중후반) | 고난도 딜러 | 퍼펙션 게이지 | Agility / Might | 등급 유지·콤보 |
| 입문 추천 파티 | 구스타브(딜·축) + 륀(광역) + 마엘(단일 폭딜) | |||
표를 외울 필요는 없지만, ‘세 명에게 동시에 자원을 분산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나만 지키면 1막은 별 무리 없이 넘어갑니다. 픽토·룬은 챕터 클리어 보상으로 추가 슬롯이 열리니, 처음부터 완벽한 세팅을 짜겠다고 끌어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기 전·시작하기 전 알아둘 단점과 함정
점수만 높은 게임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게임도 아닙니다. 살 때 후회를 줄이려면 다음 다섯 가지는 꼭 체크하고 들어가는 편이 좋습니다.
1) 한국어 더빙 미지원
앞에서 짚었지만, 한국어 음성은 없습니다. 자막을 끌어다 보는 데 거부감이 큰 분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분명합니다. 특히 운전 비유처럼 ‘다른 일 하면서 듣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불편합니다.
2) UE5 기반의 PC 최적화 편차
출시 초기 PC판은 셰이더 컴파일 스터터와 일부 구간 프레임 드랍이 보고됐습니다. 패치로 많이 개선됐지만, 중급 GPU에서는 여전히 옵션 타협이 필요합니다. PC로 본격적으로 갈 거라면 GPU 선택이 의외로 큰데, 가격대별 실측은 RTX 50 시리즈 게임 실측 프레임 비교에서 라인업별 한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어렵다, 그것도 진심으로
난이도 옵션이 있지만, 보스의 패턴 자체가 패리 전제로 설계돼 있어 회피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구간이 후반부에 종종 나옵니다. 시간을 들여 패턴을 외우는 걸 즐기지 않는다면 ‘스토리(Story)’ 난이도로 시작해도 부끄러울 일이 전혀 아닙니다.
4) 분위기가 무겁다
상실·죽음·세대 단절 같은 주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가벼운 액션 한 판이 필요한 날에는 시작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길게 호흡할 수 있는 주말 저녁에 켜는 편이 어울립니다.
5) 멀티플레이는 없다
완전한 싱글플레이 게임입니다. 친구와 같이 떠드는 보이스 채팅용 게임을 찾고 있다면 방향이 다릅니다. 협동 RPG가 필요하다면 다른 작품을 봐야 합니다.
처음 10시간 — 후회 안 남기는 7단계 입문 가이드
구매 결심이 섰다면, 첫 10시간을 다음 흐름으로 깔아 두면 시행착오가 크게 줄어듭니다.
참고로 2026년 안에 GTA 6가 새로운 GOTY 후보로 올라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두 작품의 결이 완전히 다른 만큼 “2025의 잔상”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음 라운드 대결 구도를 미리 짚어 두고 싶다면 GTA 6 출시 신호와 PS5 vs Xbox 비교 정리를 같이 봐 두면, 2026년 게임 구매 일정 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치며
요즘처럼 시간이 통째로 비는 시기가 드뭅니다. 평일 저녁 두세 시간씩 자른 게임은 흐름이 끊겨서 잘 안 들어오는데, 익스페디션 33은 그 짧은 토막을 다음 챕터로 자연스럽게 잇는 힘이 있습니다. 더빙이 없다는 게 단점이 아니라, 자막을 따라가며 글자와 음성 사이를 오가는 그 거리가 오히려 이 게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30명대 팀이 6년을 걸어 만든 게임이 800만 장을 넘기고 GOTY를 가져갔다는 것 — 이 사건은 한 회사의 신화로 끝날 수 없습니다. 큰 회사가 큰 게임을 만든다는 공식이 흔들렸고, 한국 입장에서도 ‘한국어 더빙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좋은 작품을 거를 시기는 지났습니다. 첫 캐릭터로 구스타브를 골라 검을 들어 보고, 도저히 못 넘기는 보스가 있다면 그때 다시 표를 펴 봐도 늦지 않습니다.